2020. 8. 3. 13:40ㆍ#각종.신문기사
1.인생이 순조로울 때를 조심하라. 지금의 총리격인 문하시중 집안에서 역적으로 몰려 한순간에 관노官奴로 전락했다.
2.사내라면 눈물을 보일 시간에 재기를 꿈꿔라. 노비신분으로 노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찾아서 했다.
3.나만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마라. 관노의 신분으로 전장에 나가 나라를 구했다.
4.한 번에 과녁의 중심에 맞출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강궁强弓이란 말을 듣기까지 활을 천 번, 만 번 그 이상을 쏘고 쐈다.
5.인생이 마음먹은 모습대로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지 마라. 내 인생도 사대부 집안의 자제였다가 노비가 되었고, 노비의 신분에서 다시 풀려났다. 고난 그리고 영광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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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실존인물인 이옥李沃에 대한 이야기다. 강원도로 쳐들어온 왜적들을 노비의 신분으로 활을 들고 나가 싸워 승리한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 모두 전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강원도의 힘이자 강원도의 자랑인 ‘강궁 이옥’에 대한 이야기에서 인생을 배운다. 소설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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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궁이옥强弓李沃>에서 배운다.
1.인생이 순조로울 때를 조심하라.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문하시중 집안에서 역적으로 몰려 한순간에 관노官奴로 전락했다
이옥의 집안은 고려 말의 대단한 집안이었다. 이춘부의 아우 이원부는 응양군상장군으로 이광부는 승선承宣으로 삼형제가 모두 요직에 있었다. 친척들도 높은 자리에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안정만을 주지 않는다. 이옥의 아버지 이춘부는 공민왕의 지시에 의해 개혁을 추진하던 승려 신돈과 함께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다. 고려의 왕은 원나라의 옷을 입었고, 원나라 사람들의 머리 모양인 변발을 하고 있었다. 공민왕과 노국공부는 원나라의 옷과 머리 모양은 물론 고려의 전통과 역사를 찾으려 했다.
개혁의 중심에 신돈과 이춘부가 있었다. 새로운 고려를 만들고 강국과 문화국을 만들려 뛰어들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공민왕을 좌절하게 했다. 사랑하던 노국공주가 사망하자 공민왕의 의지가 바닥을 치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의욕과 열정을 버렸다. 개혁을 추진하던 신돈과 이춘부 일행은 나라를 잘못 인도했다며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의해 역적으로 몰렸다. 이옥의 아버지 이춘부는 처형당했다. 가족들은 관노와 관비로 전락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쫓겨나는 비극을 맞았다. 이옥은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고난을 맞았다.
2.사내라면 눈물을 보일 시간에 재기를 꿈꿔라. 노비 신분으로 노비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찾아서 했다
신분이 나쁘다고 환경이 나쁘다고 탓할 시간에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언제 새로운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가 없다. 성공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간다.
이옥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이를 물었다. 관노官奴는 관아官衙 소유의 남자 종을 노비라고 한다. 주로 개성을 비롯하여 각 지방의 감영 및 관아 등에서 관찰사나 고을 수령의 명령 하에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이옥은 명문가의 집안의 맏아들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이 몰락하고 관청의 노비가 되었다. 신분의 추락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추락이었다. 하지만 이옥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노비가 하는 일은 강원도 감영에서 관찰사의 명령을 받으며 관의 일을 뒷바라지하며 관리하는 일로 허드렛일을 담당했다. 또한 감영 청소나 무기수리, 그리고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노는 신분상 천민으로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옥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다.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를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기적처럼 찾아왔다. 무려 왜구들이 300여 척의 배를 몰고 쳐들어왔다. 위기가 기회였다.
3.나만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마라. 관노官奴의 신분으로 전장에 나가 나라를 구했다
이미 천국과 지옥을 맛본 이옥이었다. 왜적이 강원도 강릉부와 영덕, 덕원의 두 고을에 쳐들어왔다. 아버지 이춘부는 주살 당했으며 어머니마저도 관비官婢로 끌려갔다. 이옥의 동생 이빈, 이예, 이한, 이징도 예외 없이 모두 관노가 되었다. 이옥은 강원도 동계의 관노가 되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 치욕스럽고 살아있는 것이 구차스러웠다.
하지만 이옥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활을 들고 선두로 나섰다.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는 이렇게 기록했다.
<왜적이 쳐들어오니 우리 군사는 풍문만 듣고도 패하여 달아났다. 부사와 안렴사가 이옥이 용맹스럽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주어 이를 치게 하니 옥이 힘을 다하여 싸워 적을 물리쳤다. 왕이 안장 갖춘 말을 내려주고 그 역을 면하여 주었다.>
관노의 신분으로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당당하게 나가 싸웠다. 강궁이란 이름에 맞게 활을 들고 나가 관군을 이끌었고, 전장의 중심에서 싸우고 싸웠다. 역적 집안으로 몰려 수치와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다시 일어나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웠다. 그리고 위기의 나라를 구했다.
4.한 번에 과녁의 중심에 맞출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강궁强弓이란 말을 듣기까지 활을 천 번, 만 번 그 이상을 쏘고 쐈다
비운의 왕이었던 공민왕이 이옥에게 하사한 것이 강궁强弓이란 칭호였다. 활의 민족, 활의 나라에서 강궁이란 칭호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활의 민족이다. 우리는 동이족東夷族이다. 동이족은 동쪽에 사는 이족夷族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이夷는 큰대大와 활궁弓이 합쳐진 글자다. 다시 말해 큰활을 쏘는 민족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한민족은 최초의 청동기문화를 만들어낸 민족이다. 또한 동북아의 강자였다. 활의 나라였다. 활의 나라에서 강궁이란 칭호를 하사받은 사람은 이옥이 유일하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이옥은 동렬同列이었다. 이성계는 동북면병마사 이자춘의 아들이었고, 이옥은 최고위급인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 이춘부의 아들이었다. 둘 다 명문집안이었다. 하지만 공민왕에게 강궁이란 칭호를 하사받은 사람은 이옥뿐이었다.
이옥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몸과 마음을 연마하는데 힘을 썼다. 특히 활에는 정평이 나 있었다. 힘이 강하고, 정확하게 맞추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옥은 힘과 활솜씨가 좋아서 말을 타면서도 강궁을 쏘아 표적에 맞혔다. 강궁은 멀리, 정확하게 시위를 맞추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이옥은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자신을 연마했다. 공민왕은 이옥에게 친필로 쓴‘강궁’이란 글을 하사했다. 상으로는 말을 한 마리 내려주었다. 교지敎旨 형식으로 왕의 어보인 시명지보施命之寶를 찍어 내려주었다.
5.인생이 마음먹은 모습대로 되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지 마라. 내 인생도 사대부 집안의 자제였다가 노비가 되었고, 노비의 신분에서 다시 풀려났다. 고난 그리고 영광을 오르내렸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대로 오지만 인생의 사계절은 순서가 없이 찾아온다. 여름이었다가 느닷없이 겨울이 오기도 한다.
강궁 이옥은 고려 말 혼란기에 지금의 총리격인 이춘부 집안의 맏아들이었다. 이옥의 인생은 영광과 고난 그리고 다시 영광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살았다. 왕이 내려준 강궁이란 칭호를 받을 만큼 미래가 보이던 청년이었으나 역적으로 몰려 관노가 되었다. 비천한 관노로 지냈다. 강원도 일대를 쳐들어온 왜구들과 싸워 승리한 결과 관비를 면하는 면천免賤이 되었다. 인생은 한 부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생의 사계절에는 결국 치욕과 영광,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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