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3. 04:41ㆍ#일상소식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3월9일 대선에 내보낼 대통령후보를 뽑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전국을 돌며 경선을 치렀다.
경선후보 합동 TV토론회를 13치례에 열었고, 당원과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투표도 3차례 실시했다.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이재명 후보가 총 투표의 과반을 득표해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때를 대비한 결선투표는 당연히 무산됐다.
그러나 차점자인 이낙연 후보는 ‘승복’이란 말을 끝내 아낀 채 발표 현장을 떠났다.
2차 투표까지 크게 뒤지다 3차 투표에서 압도적 표차(62.37% 대 28.30%)로 이기자 내심 결선투표에 큰 기대를 건 듯싶다.
선두를 질주하던 이재명 후보의 기세가 ‘대장동 게이트’로 확 꺾인 만큼 결선투표가 시행되기만 하면 이낙연 후보의 역전승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민주당 당규는 경선 도중 사퇴한 후보가 얻은 표는 무효로 처리하고, 유효표의 과반만 득표하면 바로 후보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세균 후보와 김두관 후보는 경선에서 사퇴하기 전까지 23,731표와 4,411표를 각각 받았다.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은 이들의 표를 무효로 처리하면 50.29%로 과반에 겨우 턱걸이하지만, 유효로 계산하면 49.32%로 절반에 못 미친다.
이낙연 캠프는 사퇴 이전의 득표는 유효표로 간주하고 결선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당무위원회가 이를 만장일치로 각하하고, 이낙연 후보도 마지못해 이 결정에 승복한다고 밝히면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 절차가 모두 마무리됐다.
그러나 사퇴 이전 득표의 효력을 가리는 것은 당규 해석의 문제인 만큼 당 선관위가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재심의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의신청서를 제대로 심사하지도 않은 채 각하한 것은 비민주적 처사다.
경선을 빨리 끝내고 흐트러진 당력을 대선에 집중시킬 심산이었는지 모르나 너무 서두른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낙연 캠프의 이의 신청과는 별도로 당원 188명이 며칠 뒤 당을 상대로 대통령후보 당선 결정의 효력 정지를 청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2주일 만에 단 한 차례 심리한 후 그 다음 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아마도 법리보다는 이낙연 후보의 승복으로 결선투표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는지 모른다.
민주당의 당내 경선은 끝났지만 이 기회에 사퇴 이전 득표의 유효 여부에 대한 당규 해석만큼은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과반수의 원칙과 결선투표제를 둔 당규의 취지를 살펴봐야 한다.
법률적으로 모든 단체의 주요 의사 결정은 구성원 과반수의 참가와 참가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에 의해야 한다(헌법 제49조, 국회법 제109조,
민법 제75조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 주요 의사 결정을 강행하는 단체는 이미 민주적 단체가 아니다.
어느 단체가 유효표의 과반수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정관에 못 박고 있다면 이 규정은 적법할까?
예를 들어 보자.
재적회원 100명인 단체의 총회에 60명이 참석해 주요 의안을 투표에 부친 결과 찬성 26표, 반대 24표, 무효 10표가 나왔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가결이다.
그러나 유효표만 따진다면 26명이 찬성하고 34명이 무효표를 던졌더라도 가결되는 경우마저 예상할 수 있다.
무효표를 던진 34명은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무효표를 던진 회원들은 총회에 출석하지도 않은 것으로 치고 과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유효표의 과반수에 의하는 규정은 당연 무효다.
회장을 비롯한 임원 선거 방식에는 과반이든 아니든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으면 즉각 당선자로 결정하는 종다수제(從多數制)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선투표로 당선자를 가리는 결선투표제가 있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 등의 선거를 모두 종다수제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 경선도 종다수제다.
민주당처럼 사퇴 이전의 득표를 무효로 처리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사실상 종다수제에 해당된다.
당규에 규정된 결선투표제와 모순된다는 얘기다.
앞서 지적한 대로 사퇴 이전의 득표를 유효표로 계산하면 이재명 후보는 과반 득표에 실패한 샘이 된다.
예외는 확대해선 안 된다는 게 확고한 법리다.
민주당은 이낙연 캠프의 이의를 받아들여 결선투표를 실시했어야 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의 지지를 얻은 후보를 내세워 그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취지다.
과반 득표에 실패하고도 종다수로 당선된 후보에 비해 대표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결선투표를 실시하지 않은 채 경선을 끝낸 것은 당규 해석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결국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하자 있는 경선으로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하자는 우리 공직선거법상 당내 경선의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