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소식

#새 엄마와 내복 세벌

#사계절 2023. 5. 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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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이른 봄,
엄마는 나와 오빠를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당시 중학생인 오빠와 초등학교 5학년인 나를 아빠에게 부탁한다며 눈물짓던 마지막 길.

남겨진 건 엄마에 대한 추억과 사진 한 장. 엄마는 사진 속에서 늘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의 몫까지 채워가며 우리 남매를 길러야만 했다.

그게 힘겨워서였을까?
중학생이 되던 해 여름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데려왔다.

"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빠의 말씀을 우리 남매는 따르지 않았다. 결국 생전처음 겪어보는 아빠의 매 타작이 시작되었고, 오빠는 어색하게 “엄마”라고 겨우 목소리를 냈지만, 난 끝까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왠지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 돌아가신 진짜 엄마는 영영 우리들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종아리가 회초리 자국으로 피 멍이 들수록 난 입을 앙다물었다.

새엄마의 말림으로 인해 매 타작은 끝이 났지만, 가슴엔 어느새 새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새엄마를 더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방에 있던 엄마 사진을 아빠가 버린다고 가져가 버린 것이다.
엄마 사진 때문에 내가 새엄마를 더 받아들이지 않는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때부터
새엄마에 대한 나의 반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새엄마는 분명 착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적개심은 그 착함마저도 위선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다. 난 언제나 새엄마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그 해 가을 소풍날이었다.
학교근처 계곡으로 소풍을 갔지만, 도시락을 싸가지 않았다. 소풍이라고 집안 식구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고 모두들 점심을 먹을 때, 계곡 아래쪽을 서성이이고 있는 내 눈에 저만치 새엄마가 들어왔다. 손에는 김밥도시락이 들려있었다.

뒤늦게 이웃집 정미 엄마한테서 소풍이라고 전해 듣고 도시락을 싸오신 모양이었다.

난 도시락을 건네받아 새엄마가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쏟아버렸다.
뒤돌아 뛰어가다 돌아보니, 새엄마는 손수건을 눈 아래 갖다 대고 있었다. 얼핏 눈에는 물기가 반짝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증오와 미움 속에 중학시절을 보내고 3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입 진학상담을 해야 했다.

아빠와 새엄마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가까운 인근의 인문고 진학을 원하셨지만, 난 산업체 학교를 고집하였다.

새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기 싫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결국, 내 고집대로 산업체 학교에 원서를 냈고 12월이 끝나갈 무렵 경기도에 있는 그 산업체로 취업을 나가기로 결정됐다.

드디어 그날이 오고, 가방을 꾸리는데 새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정말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경기도에 도착해서도 보름이 넘도록 집에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산업체 공장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낯섦이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옷 가방을 정리하는데 트렁크 가방 맨 아래
검은 비닐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누군가 가방 속에 넣어놓은 비닐봉투. 봉투 속에는 양말과 속옷 두벌 그리고 핑크빛 내복 한 벌이 들어있었다. 편지도 있었다. 가지런한 글씨체.
새엄마였다.

두 번을 접은 편지지 안에는 놀랍게도 아빠가 가져간 엄마사진이 들어있었다.

새엄마는 아빠 몰래 엄마사진을 간직했다가 편지지속에 넣어서 내게 준 것이다. 이제껏 독하게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며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이 눈물에 씻겨 내렸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그날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첫 월급을 타고 일요일이 되자, 난 홍천행 버스를 탔다. 밤새 눈이 많이 내려 들판에 쌓여있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새엄마의 내복.

새엄마 아니 엄마는 동구밖에 나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빗자루가 손에 들린 엄마 뒤에는 훤하게 아주 훤하게 쓸린 눈길이 있었다.

“새엄마!  그 동안 속 많이 상하셨죠?
이제부턴 이 내복처럼 따뜻하게 엄마로 모실게요.”

아직도 말로 못하고 속말만 웅얼거리는 나를, 어느새 엄마의 따뜻한 두 팔이 감싸 안고 있었다.

--♡ 출처: 좋은 생각 ♡--


오늘은 코끝이  찡한 글을 읽어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날되세요!!!
늘 감사합니다.

己未🐏🐏🐏🐏🐏🐏🐏

잃어버린시간들

60대 중반의 어떤 사람이 아직 동이 트기전 캄캄한 새벽에 강가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90이 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 이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힘에겨워 겨우겨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께서 다가와,
"여보세요 !
이 가방에 들어있는 것들은 내가 평소에 돌맹이를  좋아해서 평생동안 주어온 것들입니다.

어찌보면 내 모든것을 바쳐 모아 왔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죽을날도 얼마남지 않은것 같고 내가 메고 가기엔 너무나 힘이 드는군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란 생각이듭니다.

그렇다고 아까워서 버릴수는 없고,
그래서,
당신께 드릴테니 이걸 가지고 가세요."

하고는 그 가방을 건네 주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버렸습니다.

노인께서 사라진뒤,
호기심에 그 가방을 열어보니
돌맹이들로 가득차 있고 하나하나 헝겁으로 꽁꽁 싸매 있었습니다.

그래서 헝겁을 풀어보니 정말 볼품없는  돌먕이들 뿐이었습니다.

가방도 너무 무겁고 심심하던 차에 그는 걸어 가면서 가방속의 돌맹이 하나씩을 꺼내서 강속 저 깊은곳을 향해 멀리 던지기 시작 했습니다.

낭떠러지 밑 멀고 깊은곳으로 하나씩
던질 때마다 어둠속에서,
첨벙 첨벙 들려오는 물소리를 즐기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한개의 돌을 꺼내어
무심코 던지려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가
떠오르는 태양 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그는 돌을 들여다 보고서
가슴을 쳤습니다.

그 빛나는 돌맹이는 바로 다이아몬드  원석 덩어리 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가방속에
수 십개의 덩어리가 들어 있었는데

그는 그게 쓸모없는 돌덩이로 알고
그동안 강물속에 다 던져 버리고,
이젠 마지막 한개만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쉬워 가슴을 치고
머리를 짓찧으며 넋이 나가
서 있는 모습, 
이런 모습이
혹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그동안 내게 찾아온,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
수많은 감사의 시간들,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을...

흘러가는 세월이라는 강물에
하나하나 던져 버리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부터라도 하나하나
확인하고 챙기며 살아갑시다.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내가 만나는 주변 사람들을
사랑 할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대접받기 보다
내가 먼저 섬길 수 있어서 좋은
그런 하루 하루를
만들어 갑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내게 주어진 다이아몬드 덩어리 한개라도 곱게 간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가는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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