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소식

#수호지 연재 002 #수호지 제2회-1

#사계절 2022. 9. 2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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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가 홍신에게 말했다.

“태위께서는 모르십니다. 이 전각 안에는 당초에 통현국사께서 법을 전하면서 당부하시기를, ‘이 전각 안에는 36명의 천강성(天罡星)과 72명의 지살성(地煞星), 도합 108명의 마왕을 진압하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우고 부적을 붙여 두었다. 만약 저들을 세상에 내놓으면 필시 많은 생명을 괴롭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태위께서 저들이 탈출하도록 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홍신은 주지의 말을 듣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급히 행장을 수습하여 종자들을 이끌고 산을 내려가 동경으로 돌아갔다. 주지는 도사들과 함께 관원들을 전송하고 나서 궁으로 돌아가 전각을 수리하고 비석을 바로 세웠다.

홍신은 가는 도중에 종자들에게 분부하기를, 요마들을 달아나게 한 일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게 하였다. 황제가 알게 되면 질책을 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길을 재촉하여 동경으로 돌아갔다. 동경에 당도하자,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들렸다.

“장진인이 동경 궁중에서 7일 밤낮으로 제사를 지내고 부적을 나눠주어 전염병은 모두 사라지고 백성이 평안해졌으며, 장진인은 학을 타고 구름에 올라 용호산으로 돌아갔다.”

홍신은 다음날 아침 일찍 조정으로 가서 황제를 알현하고 아뢰었다.

“장진인은 학을 타고 구름에 올라 먼저 동경으로 왔습니다. 신들은 역참들을 거쳐서 이제 비로소 도착하였습니다.”

황제는 홍신에게 상을 내리고 본래의 관직으로 복귀하게 하였다.

인종황제는 재위 43년에 붕어하였는데, 태자가 없어 제위를 복안의왕 윤양의 아들에게 전하였다. 그는 태종황제의 자손으로 제호를 영종이라 하였다. 영종은 재위 4년만에 제위를 신종에게 전하였고, 신종은 재위 18년만에 제위를 철종에게 전하였다. 이때까지는 천하가 모두 태평하였고 사방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

동경에 난봉꾼이 하나 있었는데, 성은 ‘고’이고 둘째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다만 창봉 쓰는 것만 좋아하였고 특히 공을 차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래서 동경 사람들은 ‘고이(高二)’라고 부르지 않고 ‘고구(高毬)’라고 불렀다. 후에 출세하자, ‘毬’ 자에서 ‘毛’ 자를 빼고 ‘人’ 자를 넣어 ‘俅’로 이름을 고쳤다.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일, 노래하고 춤추는 일, 창봉을 쓰는 일, 서로 치고받는 일, 노름 등을 잘했고, 또 시(詩)·서(書)·사(詞)·부(賦)에도 제법 능했다. 하지만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행(行)·충(忠)·량(良) 등의 도덕을 논하자면 형편없었다. 동경성 내성 밖에서 거간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왕원외의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매일 기생집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원외가 고구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사또는 고구에게 곤장 20대를 치고 경계 밖으로 추방시켰다. 동경성 안의 사람은 누구든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을 금하였다. 고구는 별 수 없이 회서의 임회주로 가서 도박장을 열고 있는 한량 류대랑에게 의탁하였다. 그의 이름은 류세권이었는데, 식객을 좋아하고 한량들을 길러 왔다. 고구는 유대랑의 집에 의탁하여 3년을 지냈다.

철종황제가 남쪽 교외에서 천하가 태평하기를 빌며 제사를 지내면서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고구도 회주에서 죄를 사면 받았으므로 동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류세권은 동경성 안에 있는 금량교 아래에서 약방을 하는 동장사와 친척이었다. 그래서 서찰을 써서 노자와 함께 고구에게 주어 동경으로 돌아가 동장사 집에 의탁하여 살아가게 하였다.

고구는 류대랑을 작별하고 보따리를 지고 임회주를 떠나 동경으로 갔다. 금량교 아래 동장사의 약방으로 가서 서신을 전했다. 동장사는 고구를 보고 류세권의 서신을 읽고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고구란 자를 어찌 우리 집에 둘 수 있겠는가? 이 자가 만약 성실한 사람이었다면 다른 집에서도 출입하는 것을 용납하여 아이들이 좋은 것을 배우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는 난봉꾼으로서 언행이 나쁜 놈이었다. 지난번에도 나쁜 일을 저질러 유배를 갔는데, 필시 옛날 성질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집에 머물게 하면 도리어 아이들이 나쁜 일을 배우게 될 것이다. 류대랑의 체면을 봐서 잠시 머물게 하면서 기회를 봐야겠다.”

동장사는 기뻐하는 척하며 자기 집에 머물게 하여 매일 술과 음식을 잘 대접했다. 10여 일이 지난 후 동장사는 한 가지 묘수를 생각했다. 의복을 준비해 주고 서찰을 쓴 다음, 고구에게 말했다.

“우리 집은 권문세가와는 거리가 멀어 족하에게는 불리할 것이오. 내가 족하를 소학사에게 천거해 주면 후에 출세하기에 유리할 것이오. 족하의 뜻은 어떠하시오?”

고구는 크게 기뻐하면서 동장사에게 사례하였다. 동장사는 하인에게 서찰을 주고 고구를 소학사의 집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문지기의 보고를 받은 소학사가 나와서 고구를 만났다. 서찰을 읽고서 본래 고구가 불량한 인간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자를 어찌 집에 들일 수 있겠는가? 인정을 베푸는 척 하면서 부마 왕진경에게 천거하기로 하자. 그는 이런 자를 좋아할 것이다.”

동장서의 서찰을 받고서 고구를 하룻밤 머물게 하였다. 다음날 소학사는 서신을 써서 사람을 시켜 고구를 왕진경에게로 보냈다.

왕진경은 철종황제의 매부이며 신종황제의 부마였는데, 그는 풍류인물을 아주 좋아하였다. 소학사가 서신과 함께 고구를 보낸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즉시 회신을 써서 보내고 고구로 하여금 집안에서 자신을 수행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고구는 때를 만나 왕진경의 집에 집안사람처럼 출입하게 되었다.

어느 날, 왕진경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는데 단왕(端王)을 초청하였다. 단왕은 신종황제의 열한 번째 아들로서 철종황제의 아우인데, 구대왕(九大王)이라고 불렸다. 그는 총명하고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부랑자들이나 거간꾼들의 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고, 그런 자들을 잘 만나고 또 좋아하였다. 거문고·바둑·글씨·그림 등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공차기, 탄궁 쏘기, 퉁소 불기, 거문고 연주, 노래하고 춤추기 등을 좋아하였다. 그날 왕진경의 집에서 연회를 준비하였는데, 산해진미가 모두 갖추어졌다.

단왕이 왕진경 집에 당도하자, 왕진경은 자리를 마련하고 단왕을 중앙에 청하여 좌정하게 하였다. 왕진경이 마주앉아 술잔을 몇 번 올리고 함께 두 차례 식사를 했다. 단왕은 일어나서 측간을 갔다 오다가 서재로 들어가 잠시 쉬었는데, 책상 위에 옥으로 만든 한 쌍의 사자 모양 서진을 발견하였다. 아주 잘 만들어져 정교하고 영롱하였다. 단왕은 서진을 손에 쥐고 돌려보면서 말했다.

“좋네!”

왕진경은 단왕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옥룡 붓걸이도 하나 있는데 같은 장인이 만든 것입니다. 지금은 제 손에 없으니, 내일 서진과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단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후의에 깊이 감사합니다. 아마도 붓걸이는 더욱 신묘할 것 같습니다.”

“내일 궁중으로 보내드릴 터이니 보십시오.”

단왕은 다시 감사 인사를 하였다. 두 사람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저물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하여 헤어졌다.

다음날, 왕진경은 옥룡 붓걸이를 꺼내 사자서진 한 쌍과 함께 금합에 담아 누런 비단으로 싸고 서신을 써서 고구를 시켜 보냈다. 고구는 왕진경의 명을 받고 두 문방구와 서신을 갖고 단왕의 궁중으로 갔다. 문을 지키는 관리가 하인에게 말을 전하였다. 얼마 후 하인이 나와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고구가 인사를 하고 대답했다.

“소인은 왕부마의 명으로 특별히 문방구를 대왕께 바치러 왔습니다.”

“전하께서는 정원에서 환관들과 공을 차고 계십니다. 가 보시오.”

“번거롭지만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하인이 정원 앞까지 안내주었다. 고구가 보니, 단왕은 서너 명의 어린 환관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었다. 고구는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종자들의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고구가 출세할 운이 다가왔다. 공이 땅에서 튀어 올라 단왕이 잡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곧장 고구의 발 앞에 떨어졌다. 고구는 공이 발 앞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용기를 내어 ‘원앙괴(鴛鴦拐)’라는 기술로 공을 차서 단왕에게 보냈다. 단왕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고구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고구는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인은 왕부마의 수행원입니다. 주인의 명을 받아 두 문방구를 가지고 대왕께 바치러 왔습니다. 여기 서신을 올립니다.”

단왕은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매형이 마음에 두고 있었군.”

고구는 서신을 꺼내 바쳤다. 단왕은 함을 열어 문방구를 보고 수행원에게 건네주었 다. 단왕은 문방구에는 신경 쓰지 않고 고구에게 먼저 물었다.

“너는 원래 공을 잘 차는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고구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소인은 고구라고 하옵니다. 공을 몇 번 차 본 적이 있습니다.”

“좋아! 마당으로 와서 한번 차 봐라.”

고구는 절하며 말했다.

“소인 같이 미천한 놈이 어찌 감히 대왕 앞에서 다리를 올리겠습니까?”

“단지 공을 찰뿐인데 뭐 어떠냐?”

고구는 다시 절하며 말했다.

“그래도 어찌 감히?”

서너 번 사양했으나, 단왕은 끝내 공을 차라고 하였다. 고구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며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몇 번 공을 차자, 단왕은 갈채를 보냈다. 고구는 평생 쌓아온 기술을 다 발휘하여 단왕의 비위를 맞추었다. 공을 차는 모양이 마치 공이 몸에 풀로 붙여 놓은 듯하였다. 단왕은 크게 기뻐하며 고구를 돌려보내지 않고 궁중에 하룻밤 머물게 하였다.

다음 날, 단왕은 연회를 열어 왕진경을 궁중으로 초청하였다. 한편, 왕진경은 당일 늦게까지 고구가 돌아오지 않자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다음 날 문지기가 와서 보고하였다.

“구대왕께서 사람을 보내 영을 전하기를, 주인님을 궁중 연회에 초청한다고 합니다.”

왕진경은 나가서 심부름꾼을 만나 초청장을 받아보았다. 즉시 말에 올라 궁중으로 가서 단왕을 알현하였다. 단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두 문방구를 보내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연회석으로 가서 단왕이 말했다.

“저 고구라는 자가 공을 아주 잘 차서, 내가 그를 수행원으로 삼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왕진경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그를 쓰시겠다면 궁중에서 시중을 들게 하십시오.”

단왕은 기뻐하면서 잔을 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은 한담을 주고받다가 저녁에 헤어졌다.

단왕은 이때부터 고구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하고 궁중에 머물러 숙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는 단왕의 총애를 받아 매일 수행하면서 촌보도 떨어지지 않았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철종황제가 승하하였는데, 태자가 없어, 문무백관이 상의하여 단왕을 황제로 책립하였다. 제호를 휘종이라 하였다. 등극한 후 한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어느 날, 황제가 고구에게 말했다.

“짐이 너를 등용하고자 하는데, 군공(軍功)이 있어야 승진을 시킬 수 있다. 먼저 추밀원에 이름을 올리고 짐을 수행하도록 해라.”

후에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고구를 수도방위사령부인 전수부(殿帥府) 태위(太尉;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고구는 길일을 택하여 전수부에 부임하였다. 전수부에 소속된 관리와 장교들이 모두 와서 인사하였다. 고구는 일일이 점검을 했는데, 단 한 사람 황실 친위대인 금군(禁軍)의 교두(敎頭; 교관)인 왕진(王進)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는 보름 전에 병가를 냈는데 아직 병이 낫지 않아 관직에 복귀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구는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헛소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은 상부에 항거하는 것이며 나에게 대드는 것이다! 이놈이 병을 핑계 삼아 집에 있는가 보니, 당장 가서 잡아오너라!”

즉시 사람을 보내 왕진을 잡아오게 하였다. 한편, 왕진은 처자도 없이 다만 나이 60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군관 둘이 왕진을 찾아가 말했다.

“지금 고태위가 새로 부임했는데, 교두님만 불참했습니다. 군정사가 병이 나서 집에 있다고 병가 서류를 보여줬지만 고태위는 믿지 않고 교두님이 꾀병을 부리며 집에 있다고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가셔야겠습니다. 만약 가지 않으시면 저희도 모두 연루되게 생겼습니다.”

왕진은 그 말을 듣고서 아파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왕진은 전수부로 가서 태위를 뵙고 절을 네 번 올리고 인사를 한 다음 한쪽으로 가서 섰다. 고구가 말했다.

“네놈이 교두 왕승의 아들이냐?”

왕진이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고구가 소리쳤다.

“너의 애비는 본래 길거리에서 봉술을 부리면서 약을 팔던 자인데, 너에게 무슨 무예가 있겠느냐? 전관이 눈이 멀어 너를 교두로 삼았지만, 어찌 감히 나를 희롱하여 점검에 참여하지 않았단 말이냐! 너는 누구의 권세를 믿고 병을 핑계로 삼아 집에서 편안하게 놀고먹었던 것이냐?”

왕진이 아뢰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병이 아직 낫지 않았습니다.”

고구가 꾸짖었다.

“이런 죽일 놈! 병이 아직 낫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어떻게 왔단 말이냐!”

왕진이 또 아뢰었다.

“태위께서 부르시니, 어찌 감히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구는 크게 노하여 좌우에 명하였다.

“저놈을 묶어 놓고 매우 쳐라!”

장교들은 모두 왕진과 친한 사이라 군정사와 함께 모두 고하였다.

“오늘은 태위께서 부임하신 좋은 날이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고구가 소리쳤다.

“너! 이 죽일 놈아! 여러 장교들의 체면을 보아 오늘은 너를 용서해 주겠다. 내일 다시 너를 처리하마.”

왕진은 사죄하고 일어나면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는데, 비로소 고구임을 알아보았다. 왕진은 전수부를 나서면서 탄식하여 말했다.

“이번에 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구나! 나는 ‘고태위’라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바로 동경의 난봉꾼인 ‘고이’가 아닌가? 저놈은 선친께 봉술을 배우다가 봉에 맞아 넘어져 서너 달 동안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지. 그런 원한이 있었는데, 지금 출세해서 전수부 태위가 되었으니,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지도 않게 그의 부하가 되어 있으니. 예로부터 이르기를, ‘관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권력이 무섭다.’고 하였다. 내가 저놈과 싸울 수도 없고, 어쩌면 좋단 말인가?”

왕진은 집에 돌아와서도 근심을 그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모자는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삼십육계(三十六計),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왕진이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옳습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좋은 계책인 것 같습니다. 연안부의 경락상공이 변방을 지키고 있는데, 그 수하 군관들이 일찍이 동경에 왔을 때 저의 창봉술을 좋아하였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그에게 의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도 필요할 터이니, 몸을 지키기에 족할 것입니다.”

모자간에 상의가 정해지자, 어머니가 말했다.

“얘야, 우리가 몰래 달아나야 하는데, 문 앞에 병사 두 명이 지키고 있구나. 아마 전수부에서 너를 감시하기 위해 보낸 것 같다. 저들이 알면 달아날 수 없을 거야.”

“괜찮습니다.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왕진은 두 병사 가운데 먼저 장가를 불러 분부했다.

“너는 저녁밥을 먼저 먹고 내 심부름을 좀 해다오.”

장가가 말했다.

“교두께서 소인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내가 며칠 동안 병이 있어서 산조문 밖의 사당에서 향을 피우면서 소원을 빌려고 한다. 내일 아침 일찍 가서 향을 피우려고 하니, 너는 오늘 저녁에 미리 가서 사당지기에게 부탁을 해 두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 일찍 사당 문을 열어 두고 내가 향을 피우고 희생을 바칠 수 있도록 기다려 달라고 해라. 너는 사당에서 쉬면서 나를 기다리도록 해라.”

장가는 응답을 하고 먼저 저녁밥을 먹은 다음 준비를 하러 사당으로 갔다.

그날 밤 모자는 행장을 수습하였다. 의복·귀중품·은자 등을 보따리에 싸고, 양식 포대 두 개를 말에 묶었다. 새벽에 아직 하늘이 밝기도 전에 왕진은 이가를 깨워 분부하였다.

“너는 이 은자를 가지고 사당으로 가서 장가와 함께 희생을 사서 삶고서 나를 기다려라. 나는 종이와 초를 사서 곧 뒤따라가겠다.”

이가는 은자를 가지고 사당으로 갔다.

왕진은 준비한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내어 양식 포대를 단단히 묶고 뒷문으로 끌고나가 어머니를 말에 태웠다. 집안의 물건들은 모두 버려둔 채 앞뒤 문을 잠근 다음, 보따리를 짊어지고 말 뒤를 따라 걸었다. 아직 새벽이라 하늘 밝지 않았는데, 서화문을 나가 연안부로 향하는 길을 취하였다.

한편, 두 병사는 희생을 사서 삶고 사당에서 점심때가 될 때까지 기다렸는데, 왕진이 오지 않았다. 이가는 마음이 초조해져서 집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두 문이 모두 닫혀 있었다. 반나절 동안이나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사당에 있던 장가도 의심이 들어 집으로 달려왔다. 이가와 함께 황혼 때까지 왕진을 찾아다녔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왕진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노모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두 병사는 왕진의 친척집을 찾아가 보았으나, 역시 그곳에도 없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도 연루될까 두려워 전수부로 달려가서 고하였다.

“왕교두는 집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모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고태위는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저 죽일 놈이 도망을 가? 그래 어디까지 달아날 수 있는지 보자!”

즉시 공문을 각 주의 관아로 내려 보내 달아난 왕진을 체포하라고 하였다. 두 병사는 보고를 했으므로 죄를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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